인기가 너무 많아 죽은 개구리

혐오 상징이 된 캐릭터, 죽음을 맞다

어딘가 서럽고 억울한 표정의 개구리 그림, '개구리 페페(Pepe the Frog)'를 아시나요? 2000년대 중반 등장한 만화 속 개구리 페페는 블로그나 SNS 등에서 즐겨 쓰이는 인기 캐릭터입니다.

"개구리를 볼 때마다 미소가 지어져요. 독자들도 이 만화를 생각할 때마다 이런 즐거움에 전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페페가 등장한 만화 '보이스 클럽'(Boy’s Club)의 작가 맷 퓨리의 말입니다.

작가의 바람대로 페페는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난 십여년간 사람들은 페페를 가지고 다양한 버전의 '짤'(meme)*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짤: 시선을 끌기 위해 게시물에 붙이는 재미있는 사진이나 그림

팝스타 케이티 페리도 SNS 글에 페페의 짤을 이용했죠. 페페를 이용한 다양한 감정표현을 국내 블로그나 SNS 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로 페페의 인기는 세계적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기많은 캐릭터 페페가 최근 죽음을 맞았습니다. 지난 8일(현지시간) BBC 등 외신은 페페의 작가 퓨리가 관 속에 누운 페페를 그려 그를 '죽였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페페의 죽음은 높아진 그의 인기 탓입니다. 인종주의자, 극우집단 등에서도 '페페 짤'을 사용한 겁니다. 만(卍)자 무늬등 나치 상징과 합성된 페페의 모습에 작가 퓨리는 불쾌감을 표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미국 대선기간 극우·백인우월주의 성향의 대안우파 집단이 페페를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모습처럼 만들어 활용했습니다. 트럼프도 싫지않은 듯 이 그림을 리트윗했죠.

급기야 지난해 9월, 페페는 반 명예훼손 연맹(Anti-Defamation League, ADL)이 지정한 혐오 상징이 됐습니다. 페페가 '불타는 십자가' 등 인종차별의 상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겁니다.

ADL에 등록된 혐오 상징은 미국 남부동맹군 깃발 등 차별과 혐오의 의미가 명백한 것도 있지만 숫자나 손모양 등 평이한 것, 그리고 페페처럼 만화 캐릭터까지 다양합니다.

우리나라의 한 웹사이트에서 특정 단어나 손모양으로 고인을 모독하는 것처럼, 외국의 혐오집단도 자기들만의 상징으로 비하와 혐오를 드러내는데요. 여기에 페페가 희생당한 겁니다.

결국 작가는 페페를 죽여서 자신의 창조물이 혐오 상징이 된 것에 대한 반감과 슬픔을 드러냈습니다. 세계 곳곳에 퍼진 극단주의와 혐오가 인기 캐릭터를 죽인, 씁쓸한 사건입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김지원 작가·이홍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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