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patch=이명주기자] "장하빈과의 싱크로율이요? 0%죠. 애정하는 캐릭터지만 닮았다고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섬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말간 얼굴로 상대를 바라봤다. 반달 눈웃음은 보는 사람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배우 채원빈이 안방극장에 상륙했다. MBC-TV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장하빈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첫 주연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열연을 펼쳤다.

말 그대로 도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실제 성격과 상반된 인물을 연기해야 했다. "(굳이 닮은 점을 찾자면) 집요한 부분인데 그 외에는 전혀 다르다"고 말을 이었다.

"저는 슬프면 울고 기쁘면 우는 사람이거든요. 슬픔을 느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하니 힘들더라고요."

다시없을, 기회이기도 했다. 배우 한석규와 부녀 관계로 맞붙는 역할인 것. 더욱이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한석규 복귀작으로 일찌감치 기대를 모았다.

"(캐스팅이 확정됐을 때) 복합적인 감정이었죠. 너무 기쁜데 '어떻게 하지?' 했어요. (웃음)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랑을 받아서 행복합니다."

'디스패치'가 최근 채원빈을 만났다. 감정을 좀처럼 내세우지 않는 하빈이 되기까지, 노력의 과정을 들었다.

◆ 이친자ㅣ부녀 스릴러의 탄생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의 플롯은 생경하다. 부녀가 남보다 못한 사이로 비친다. 아빠는 딸을 의심하고, 딸은 그런 아빠에 분노한다.

소통의 부재로 인한 불신을 극단적인 방향으로 풀어나갔다. 채원빈은 "부녀 스릴러인데 가족애와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혀 붙지 않는 장르와 주제가 매력적"이라고 소개했다.

인물들도 이채롭다. 국내 최고 프로파일러와 그의 딸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다. 끊임없이 은폐하고 파헤치는 과정을 반복한다.

특히 채원빈이 맡은 하빈은 여타 작품들 속 주인공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어딘가 수상쩍다. 감정 표현에 어색한 것을 넘어 감정이 없는 걸로 보이기도 한다.

일례로 2회 중반, 하빈이 눈시울을 붉혔다. 거짓말한 이유를 따져 묻는 아빠에게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내 말 좀 믿어주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

알고 보면, 악어의 눈물이다. 홀로 남겨지자 언제 울었냐는 듯 차갑게 돌변했다. 채원빈은 "그 눈물은 아빠를 좀 더 설득하기 위한 도구"라고 설명했다.

◆ 이친자ㅣ하빈이 감정 읽기

캐릭터 표현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빈은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철저히 계산된 행동을 한다.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이용하는 패턴도 보인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채원빈은 "(촬영) 초반엔 이해가 안 갔다. 하빈이의 인간관계를 정리하는 데에서 어려움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하빈이가 아빠한테 '왜 나를 못 믿냐'고 하거든요. '왜 유대감도 없는 아빠의 믿음을 얻고 싶을까' 납득이 안 갔죠. 근데 속마음은 다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촬영이 진행될수록 하빈에 동화됐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순간부터) 처음처럼 하빈이를 표현하는 데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감정을 억눌러야 하는 대목에선 수차례 고비가 찾아왔다. 채원빈은 "가끔 그게 잘 안돼서 울음이 터졌다. 마음이 너무 흔들릴 때에는 다잡을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2회 눈물 연기 장면은 설득의 도구이지만 하빈이가 거짓말한 건 아니라고 해석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감정에 집중해서 우느라 말이 안 나왔어요. 유독 힘들게 찍은 기억이 납니다."

◆ 이친자ㅣ한석규의 조언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한석규의 도움을 받았다. 그는 연기 선배로서, 동년배 딸을 둔 아빠로서 여러 조언을 건넸다.

채원빈은 "한석규 선배는 워낙 잘 이끌어주시는 분"이라며 "내가 집중하기 힘들어할 때 '극중 상황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다"고 고마워했다.

"이 상황이 우리한테 실제로 일어난 건 아니지만 드라마 속에서 이 시간은 존재하는 시간이라고 하셨어요. 당연하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까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죠."

함께 머리를 맞대고 신을 구체화했다. "(태수와 하빈이) 서로 다른 얘기를 하다 보니 붕 뜬 느낌이 있었다. 사전 배경을 같이 나누고 입밖으로 내뱉으면서 정리했다"고 회상했다.

남다른 애정도 표출했다. 채원빈은 "정말 아버지 같은 분"이라면서 "저희 아빠가 서운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처럼 챙겨주신다' 매번 이야기했을 정도"라고 추켜세웠다.

"극중 부녀로 나오지만 평범한 부녀 사이가 아니잖아요. 그 외의 시간들에서는 평범하고 따뜻하게 챙겨주셨습니다. 같이 작업하는 하루하루 줄어가는 게 아쉬울 만큼 감사했어요."

◆ 이친자ㅣ인생작의 결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는 유독 신인 배우들이 주목받은 작품이다. 채원빈 외에도 김정진, 유의태, 한수아 등이 진가를 발휘했다.

세심한 디렉팅 덕분이다. 송연화 감독이 각 출연진의 목소리 톤부터 동선, 연기 방향까지 세세하게 지도했다.

채원빈은 "작은 부분도 절대 넘어가지 않으셨다"며 "더 실제 같고 집중할 수 있었다.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돌아봤다.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소환했다. 그는 마지막 촬영이었던 생일 축하 장면을 거론했다. "하빈이가 늘 머리를 내리고 다니지 않았나. 감독님한테 '이번 신에선 머리를 (귀에 꼽는 게 어떠냐) 했는데 우시더라"고 전했다.

"종방연 때 감독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하빈이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고요. (그 말 듣고) 같이 울 뻔했죠."

연말 시상식 트로피를 향한 욕심도 내비쳤다. "한석규 선배와 베스트 커플상 받고 싶다. 제일 탐나는 상"이라고 웃었다.

"이번 작품이 인생작이에요. 하빈이를 연기하면서 너무 많은 성장통을 겪었는데요. 제 인생의 큰 의미로 자리 잡을 것 같습니다."

<사진제공=아우터유니버스,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