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겨냥한 전방위 공세를 펴고 있는 이스라엘이 1일(현지시간) 레바논 국경을 넘어 지상전을 개시한 가운데 레바논 남부에서는 이미 지난주부터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북쪽으로 가려는 피란민들의 필사의 탈출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레바논에서는 전쟁 위험이 고조되면서 수십만명의 주민이 수도 베이루트를 향해 피란하게 만들었다고 현지 당국을 인용해 전했다.

나지브 미카티 레바논 총리는 지난달 29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피란민이 최대 100만명에 달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레바논에서 발생한 최대 규모의 피란민 이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유엔 인도적지원조정실(OCHA)은 지난달 23일부터 지난 27일까지 닷새간 레바논에서 11만명 넘는 피란민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레바논 전체 인구는 약 550만명이다.

이스라엘은 지난달 23일 헤즈볼라를 상대로 '북쪽의 화살' 군사 작전을 선포하고 레바논 남부 등지에 연일 대규모 공습을 진행해왔다.

같은 달 27일에는 베이루트 남부 교외 다히예 지역의 주거용 건물을 공습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 등 지휘부를 제거했다. 이날 공습에 현지 주민들은 베이루트 도심으로 몰려들어 거리와 빈 건물에 몸을 피했다.

레바논 당국은 지난달 23일 이래 공습으로 1천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레바논 남부 주민 알리 마하나는 지난달 23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도운 뒤 가족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이스라엘 국경에서 떨어진 북쪽으로 서둘러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전체가 동시에 떠났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했다.

또다른 레바논 남부 주민 하산 파리스는 지난달 23일 자녀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공습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폭발로 집안 창문이 박살났고, 그는 그대로 세 자녀를 데리고 차를 얻어타고 살던 지역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또 몇시간을 걸은 뒤 다른 차를 얻어타고 베이루트로 향할 수 있었다.

평소에는 베이루트까지 90분 정도 걸리지만 이날은 도로에 피란을 가려는 차량이 꽉 들어차면서 거의 24시간이 걸렸다.

베이루트까지 가는 길에 있는 마을들도 공습을 받았고, 주민들의 '엑소더스'로 상점과 식당은 문을 닫았다.

파리스는 꼬박 하루가 걸려 베이루트 서부의 한 학교에 만들어진 임시 대피소에 도착한 직후 "어제부터 물밖에 마시지 못했고, 음식은 못 먹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아침 일부 레바논 주민은 헤즈볼라가 군사용으로 사용하는 건물에서 나오라는 내용의 이스라엘군의 음성,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했지만, 남부 주민 다수는 공습 전에 이 같은 경고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공습이 시작되자 집을 서둘러 떠났다. 아기에게 필요한 우유나 기저귀, 환자나 고령자에게 필수적인 약도 챙기지 못하고 피란에 나선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공습을 피해 온 베이루트나 다른 지역들도 피란민을 맞을 준비는 돼 있지 않은 실정이다.

레바논 정부는 수백개의 학교를 대피소로 만들었지만, 구호단체들은 매트리스나 기본적 물자를 조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가족과 함께 지난 24일 레바논 남부에서 도망쳐 나온 사미야 아야시는 2006년 전쟁 때는 베이루트 남부 교외에 있는 오빠의 집으로 피신했지만, 이번에는 오빠도 이스라엘이 그 지역을 공격할까 우려해 함께 떠났고, 베이루트에 가지 않고 우회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2006년 헤즈볼라에 납치된 군인 2명을 구출하려 국경 '블루라인'을 넘어 레바논에 군을 투입해 전면전을 벌였지만 병력 121명을 잃고 34일 만에 교전을 마무리한 바 있다.

아야시는 "우리는 안전하게 도착하길 기도했다"면서 "레바논은 전쟁이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미 문제가 아주 많다"고 말했다.

레바논은 최악의 경제난과 극심한 정치적 분열을 겪고 있으며, 100만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을 수용하며 큰 사회적 비용을 감당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번 군사 작전은 이미 어려움을 겪고 있는 레바논에 새로운 인도적 위기를 야기할 위험이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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